태그: 응답하라 1988, 1988년대, 홍콩영화, 유로댄스, 홍콩음악, 주택복권
응답하라 1988이 다시 몰고온 복고열풍!
1988년도와 2015년을 현재 시점에서 바라봤을 때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그대로 일까?
내가 그 당시 좋아했던 음악들은 주로 Wham, 아하, 모던토킹, 조이, 런던보이, 컬처클럽, CC캐치 등 유로댄스 음악에 심취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시절 우연히 듣게 된 노래 Wham의 careless whisper를 듣고 빠져들게 되었던 팝송 그 중에서도 특히 유로댄스 음악은 나의 학창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들이고 지금도 여전히 애창하고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특히 교생실습 나오셨던 미술선생님이 좋아했던 곡인 아하의 take on me는 지금 들어도 너무 좋은 음악임에는 틀림이 없다. 유투브 영상을 통해 감상해보시길...
학창시절에 팝송을 주로 듣다 보니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당시 팝송 노래책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 사실 요즘은 영어 단어 하나 외우기도 어려운데 그 당시 외웠던 팝송노래는 아직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은 청계천이 시냇물이 흐르는 공원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 청계천은 도깨비 시장이라는데가 있어서 없는게 없는 재래시장이였다.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가서 빽판이라는 것을 샀는데 운이 좋은 날은 구하기 힘든 음반을 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공부는 안하고 음악듣고 영화보고 했던 기억밖에 없다는...
요즘 음악은 대체적으로 국내 아이돌그룹이 이끌고 있으니 음악에서의 변화는 실로 엄청나지 않나 싶다. 그 당시 음악을 듣는 매체는 카세트테이프와 레코드판이였다면 지금은 MP3나 멜론같은 온라인 뮤직플랫폼이 아닐까 싶다. 이 또한 매우 많은 변화가 아닐런지...
그 당시 좋아했던 영화들은 영웅본색, 천녀유혼, 첩혈쌍웅 등 홍콩영화에 빠져서 일주일에 한 번씩
극장에 다녔었다. 그 당시 극장은 동시상영관이라고 해서 영화를 2편씩 상영해주던 곳이 많았는데 그 중에 내가 주로 이용했던 곳은 금호동에 있는 한 극장이였는데 그 당시 영화관 입장료가 500원 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주일에 2편씩 한 달에 10여편, 1년으로 치면 100여편 이상의 영화를 봤는데 그 중에 90% 이상이 홍콩영화 였으니 아마도 내 기억에 그 당시 개봉했던 홍콩영화는 거의 다 보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 잘나가던 배우는 장국영, 왕조현, 유덕화, 장만옥, 종초홍 등 이였는데 그 중에 특히 주윤발이 최고이지 않았나 싶다.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국내 광고까지 출연했으니 말이다.
특히 주윤발이 출연한 영화만 1년에 10여편 이상은 본 것 같다. 지금으로 보면 한 배우가 1년에 그렇게 영화를 많이 찍을 수 있을까 싶겠지만 그 당시 홍콩영화는 지금의 한류 열풍처럼 엄청난 붐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이 한국의 음악과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있으니 그 만큼 한국의 음악과 영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 만은 사실이다.
80~90년대 홍콩영화와 음악의 열풍은 지금 2010년대 한류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돈의 가치는 어떨까? 응답하라 1988에서 보면 복권당첨으로 하루아침에 졸부가 되어버린 성균네 가족은 그 당시 1등 상금인 1억원으로 한 가족의 인생이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지금 1억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전세도 얻을 수 없는 돈인 1억으로 인생이 바뀌기는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 당시 서민의 간절한 소망이 바로 1등 1억원 복권 당첨으로 집을 장만하는 것이였고 그래서 이름도 주택복권이였나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되는 세상이라고 부르짓던 1980년대...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글쎄 이 부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부분일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부의 되물림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어 이미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기고 상류사회로 가는 길은 죽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출세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3포세대, 5포세대, 7포세대가 만연한 현재를 30년 후에 바라보면 어떻게 기억이 될까?
지금처럼 좋은 추억으로 기억이 될까?
[참조]
1988년도와 2015년을 현재 시점에서 바라봤을 때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그대로 일까?
내가 그 당시 좋아했던 음악들은 주로 Wham, 아하, 모던토킹, 조이, 런던보이, 컬처클럽, CC캐치 등 유로댄스 음악에 심취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시절 우연히 듣게 된 노래 Wham의 careless whisper를 듣고 빠져들게 되었던 팝송 그 중에서도 특히 유로댄스 음악은 나의 학창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들이고 지금도 여전히 애창하고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학창시절에 팝송을 주로 듣다 보니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당시 팝송 노래책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 사실 요즘은 영어 단어 하나 외우기도 어려운데 그 당시 외웠던 팝송노래는 아직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은 청계천이 시냇물이 흐르는 공원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 청계천은 도깨비 시장이라는데가 있어서 없는게 없는 재래시장이였다.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가서 빽판이라는 것을 샀는데 운이 좋은 날은 구하기 힘든 음반을 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공부는 안하고 음악듣고 영화보고 했던 기억밖에 없다는...
요즘 음악은 대체적으로 국내 아이돌그룹이 이끌고 있으니 음악에서의 변화는 실로 엄청나지 않나 싶다. 그 당시 음악을 듣는 매체는 카세트테이프와 레코드판이였다면 지금은 MP3나 멜론같은 온라인 뮤직플랫폼이 아닐까 싶다. 이 또한 매우 많은 변화가 아닐런지...
극장에 다녔었다. 그 당시 극장은 동시상영관이라고 해서 영화를 2편씩 상영해주던 곳이 많았는데 그 중에 내가 주로 이용했던 곳은 금호동에 있는 한 극장이였는데 그 당시 영화관 입장료가 500원 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주일에 2편씩 한 달에 10여편, 1년으로 치면 100여편 이상의 영화를 봤는데 그 중에 90% 이상이 홍콩영화 였으니 아마도 내 기억에 그 당시 개봉했던 홍콩영화는 거의 다 보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 잘나가던 배우는 장국영, 왕조현, 유덕화, 장만옥, 종초홍 등 이였는데 그 중에 특히 주윤발이 최고이지 않았나 싶다.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국내 광고까지 출연했으니 말이다.
특히 주윤발이 출연한 영화만 1년에 10여편 이상은 본 것 같다. 지금으로 보면 한 배우가 1년에 그렇게 영화를 많이 찍을 수 있을까 싶겠지만 그 당시 홍콩영화는 지금의 한류 열풍처럼 엄청난 붐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이 한국의 음악과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있으니 그 만큼 한국의 음악과 영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 만은 사실이다.
80~90년대 홍콩영화와 음악의 열풍은 지금 2010년대 한류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지금 1억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전세도 얻을 수 없는 돈인 1억으로 인생이 바뀌기는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 당시 서민의 간절한 소망이 바로 1등 1억원 복권 당첨으로 집을 장만하는 것이였고 그래서 이름도 주택복권이였나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글쎄 이 부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부분일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부의 되물림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어 이미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기고 상류사회로 가는 길은 죽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출세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3포세대, 5포세대, 7포세대가 만연한 현재를 30년 후에 바라보면 어떻게 기억이 될까?
지금처럼 좋은 추억으로 기억이 될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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